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불혹 대신 마음의 지진이 왔다

오늘은 해운대의 경동제이드 스타벅스에서 열린 독서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느끼지만, 책을 들고 머물면서 이야기 나누기 참 좋은 곳이에요.

오늘 제가 가져간 책은 제임스 홀리스의 『The Middle Passage』, 한국어 제목으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입니다.

모임 전에 시간이 부족해 거의 시험 전날 학생처럼 급하게 읽다가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여유롭게 찍은 ‘완독 인증 사진’은 아니고, 정확히는 ‘아직 읽고 있습니다’에 가까운 사진이네요 ^^

마흔은 정말 불혹의 나이일까

이 책은 칼 융의 ‘개성화 (Individuation) ’ 이라는 개념을 심리학자 제임스 홀리스가 우리의 실제 삶에 조금 더 가까운 언어로 풀어낸 책입니다.

융은 중년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니, 이 얼마나 멋들어지게 우리의 처지를 표현하는 말인가요.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삶과 역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서로 다른 책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오늘 독서 모임에서는 저마다 다른 책을 가져왔습니다.

누군가는 사르트르의 『구토』를, 누군가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가져왔습니다. 또 다른 분들은 『연금술사』와 『각성』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소개했습니다.

소설도 있었고, 에세이도 있었고, 저처럼 심리학 책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과 질문을 풀어가는 방식은 서로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는 그 서로 다른 책들 사이에서 묘하게 하나의 질문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쩌면 책들이 처음부터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기보다, 오늘의 우리에게 그 책들이 비슷한 질문으로 다가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곳으로 돌아와도 같은 사람은 아니다

독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나이도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질문은 꼭 마흔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살면서 몇 번이고 모습을 바꾸어 다시 찾아오고, 어쩌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때로 같은 선택을 반복하고, 결국 비슷한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모험을 지나온 우리는 이미 그전과 똑같은 사람이 아닐 겁니다.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질문에 각자의 삶으로 조금씩 대답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동양에서는 마흔을 ‘불혹’의 나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마흔이 지나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마음속 지진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불혹이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자기 삶의 방향을 계속 묻는 태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빨간 안경은 제 직업을 숨기려고 가져간건데, 저 안경을 끼자마자 직업을 맞춰버리더군요.

역시 직업적 정체성을 벗기란 쉽지않네요. 칼융이 낸 숙제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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