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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요즘 로빈 크로즈나릭의 『공감, Empathy』를 읽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가, “공감”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 든 책이다.

책을 읽다 보니 “empathetic overarousal”, 공감적 과각성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죽음을 앞둔 소아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나 성폭행 피해자를 상담하는 치료사처럼,

강한 감정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사람들은 공감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결국 탈진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나는 환자를 볼 때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공감의 깊이를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프고 힘든 환자들을 오래 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 에너지가 바닥난 느낌이 든다.

외래가 끝난 날,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이 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이 쌓인다.

설명을 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일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공감에도 한계가 있는 걸까?

그 한계가 다 차기 전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공감은 정말 중요한 사람들에게만 깊게 써야 하는 능력일까?

책에서는 공감을 단순한 skill이 아니라 “craft”라고 표현한다.

장인처럼 다듬고, 조절하고,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능력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 말을 읽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공감이 타고난 감정 반응이 아니라, 다듬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그건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뜻이니까.

아마 중요한 건 공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공감의 깊이와 범위를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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